2022년 3월 1일.
보통의 졸업식은 2월에 한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이제는 어른이라는 걸 뽐내는 듯 다들 멋진 꼬까옷에 알록달록한 머리를 하고 온다.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때 난 군복을 입고, 빡빡 민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찬 바람으로 아직은 겨울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던 시기였다. 내 졸업장은 친구가 받았고, 난 계급장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 '군인'이라는 제목의 8년짜리 장편소설의 마침표를 찍은 날이 바로 오늘. 3월 1일이었다.
나와 내 친구는 앞으로 6개월간 유럽을 여행할 예정이다. 이미 약 1년 정도가 지난 일이고, 그저 일기장에 있던 내용을 블로그에 적을 뿐이지만 내게는 추억일 뿐인 이 여행기가 누군가에겐 소중한 힌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블로그에 글을 적는다.
인천공항에서 첫 여행지인 터키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서 여차저차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버스가 있단 걸 이땐 알지 못했다.) 이유 모를 두려움에 비행기 출발 5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 너무나 여유로워 보이는, '어른'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 체크인을 하고 들뜬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이제는 출발한다며 연락도 돌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안검색대 2m 앞에서 화장품가방을 위탁수화물에 넣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긴 시간을 가야 하니 경유지에서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면 딱이겠다는 멍청한 생각에 의해서였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머릿속에는 좆됐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 이게 다 얼만데.. 외국에선 구할 수도 없는 것들인데.. 진짜..?"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관계자분들께 이야기를 했다. 방법은 없었다. 결국 편의점에 뛰어가서 공병을 사고 당장에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겼다. 그것도 100ml씩만. 바디로션과 샴푸는 새것 그대로 버리고 나머지 또한 다 버렸다. 시작하자마자 이런 실수를 한 나에게 화가 너무나도 났다. 지금은 약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글을 올리는 거지만, 일기장을 펼쳤을 때 욕만 빼곡한걸 보니 그때는 정말 끔찍했나 보다. 그땐 "시작부터 이러면 어쩌나, 앞으로도 이렇게 실수가 많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 이날 이후 1년여간 비행기를 많이도 탔지만 첫 비행을 생각하며 이런 실수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딸려 밀려오는 자괴감은 덤. 뭐,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재밌는 추억일 뿐이다. 한 번 떨어져 보니 그다음부턴 제대로 날게 되었달까.
경유시간 포함 약 20시간이 걸려서 우리는 터키의 '카이세리'에 도착했다. 15kg짜리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을 헤맨 끝에 어느 허름한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하여 여행지를 가기 전 숙소를 알아보지만 이땐 글쎄.. 여행자라면 응당 현지에서 숙소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유명 여행 유튜버가 그렇게 하더라.
괜히 무섭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우리는 떨림인지 설렘인지 모를 감정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봤고, 숙소 주인이 맛집이라며 소개해준 곳에서 저녁을 먹은 뒤 출발 기념으로 술 한잔을 하고 자려고 했지만 이곳에선 술을 팔지를 않더라.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이라 그런 걸까?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첫출발을 마무리했다.
아래는 현지인이 추천해 준 카이세리 맛집이다.
BAĞDAT PÖÇ TANDIR
https://goo.gl/maps/N2HaPdCgWpn7opyn8
'유럽 > 터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키 #6] 파묵칼레, 클레오파트라의 수영장 (0) | 2023.01.13 |
---|---|
[터키 #5] 푸른색 안탈리아 (1) | 2023.01.12 |
[터키 #4] 일출, 카파도키아. (2) | 2023.01.10 |
[터키 #3] 새하얀 카파도키아. (0) | 2023.01.09 |
[터키 #2] 카이세리→괴레메 (0) | 2023.01.08 |